세상에서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은 보통 뭔가 정상이 아닌 경우가 많다. 예술·철학에서 역사적 족적을 남긴 빈센트 반 고흐나 베토벤, 랭보, 미켈란젤로, 니체 등은 이른바 ‘광기’란 단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그런 것 같다. 천재적 창조는 희생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통 사람과 똑같이 사고하고 똑같이 살아가면서 그 누구도 듣도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제시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도그빌>, <어둠속의 댄서>, <유로파> 등으로 잘 알려져 있는 덴마크의 영화감독 라스 폰 트리에가 지난 5월 칸영화제에서 “히틀러를 이해한다”고 발언했을 때, 깜짝 놀란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히틀러가 분명 잘못한 일이 있긴 하지만 그에 대해서 많이 이해하고 조금은 동정하기도 한다”고 했다. 감독은 또 히틀러를 위해 일한 건축가 알버트 스피어를 좋아한다면서 “좋다. 나는 나치다. 예술의 측면이라면 나는 스피어를 지지한다. 그는 신이 낳은 최고의 인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갑자기 이 일화를 끄집어낸 것은 천재성과 광기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흥미로운 사례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천재’ 영화감독으로 불리는 사람이 20세기 최고의 ‘미치광이’라 할 수 있는 히틀러를 이해하고 동정한다니, 역시 극과 극은 통하는 것일까?
최근 히틀러의 후계자를 자임하며 77명을 살해,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은 노르웨이 테러범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반대로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을 좋아하는 영화로 꼽기도 했다. <도그빌>의 마지막 장면은 확실히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중국의 인문학자인 자오신산은 단순히 ‘통한다’ 수준을 넘어, “천재성과 광기는 같은 근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저서 <천재적 광기와 미친 천재성>(시그마북스)에서 뇌과학 연구부터 천재들의 수많은 창조물까지 다양한 사례와 근거를 통해 이를 입증하고자 한다.
저자가 보기에 광기는 일종의 심리적·정신적 에너지다. 문제는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분출되느냐인데, 그에 따라 결과는 세상을 창조하거나 파괴하거나 매우 극단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자오신산은 말한다. “과학, 예술, 철학의 창작은 극소수의 이상 성격을 가진 천재 혹은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들이 자신들의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내는 통로다. 만일 그들이 창작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미치거나 범죄자를 저질렀을 것이다. 그들이 범죄자나 정신분열증 학자가 되지 않은 이유는 바로 과학자, 예술가, 철학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와 미치광이라 할 수 있는 아인슈타인과 히틀러에 대한 분석이 특히 흥미롭다. 아인슈타인은 평소 심각한 우울증을 앓아온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는 히틀러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은 또 공교롭게도 염세주의·비관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쇼펜하우어를 좋아했다.
저자는 “아인슈타인과 히틀러는 모두 쇼펜하우어의 비관주의에서 출발해 분투하고 싸우며 쉬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판이했다. 한 사람은 세상을 건설했지만 다른 한 사람은 세상을 무자비하게 파괴했다. 저자는 아인슈타인은 우울증과 고독, 분노의 마음을 물리학의 비밀을 열고 출구를 여는 데 집중시켰지만, 히틀러는 절망감만을 더 키워갔다고 분석한다.
히틀러 같은 이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논리 도착적 사고와 비현실성이다. 히틀러는 말했다. “신제국은 반드시 다시 한번 고대 독일 기사단의 길을 따라 전진해야 한다. 검은 독일의 쟁기로 토지를 얻게 해주고, 독일 국민이 매일 빵을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런 특성은 노르웨이 테러범 브레이비크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는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은 이익만 쫓는 10만명의 힘에 맞먹는다”, “내가 한 일은 잔혹하지만 필요한 일이었다”고 했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천재들의 정서나 사고도 정상적인 상태와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저자는 천재의 경우 현실감과의 괴리까지는 연결되지 않았으며, 이것이 천재와 미치광이를 가르는 또 다른 핵심 지점이라고 강조한다. “천재가 집중하는 대상은 현실세계와 긴밀한 관계가 있고 앞으로 객관적인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미치광이의 그것은 황당하고 비논리적이며 현실화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오신산은 병적인 논리 사고가 비단 미치광이들의 것만이 아님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서양철학의 핵심 원리인 “사람은 만물의 척도이다. 사람은 대자연의 주인이며 대자연의 모든 것은 바로 노예다”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이를 “매우 병적인 오류의 대전제”라고 지적하면서 “그 결과 기계 문명은 지구 생태 환경을 파괴했으며, 인류 자신 역시 멸망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천재성과 광기, 천재와 미치광이 사이의 거리는 더더욱 좁혀질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과연 누가 미치광이이고 누가 '정상인'(?)인지 정확히 분별하기조차 어려워 보인다. 히틀러나 브레이비크를 미치광이로 표현하는 당신은 과연 비현실적이고 도착적인 논리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는가?
저자는 한가지 예를 들며 당신을 시험한다. 1961년 동독 정부는 서독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베를린 장벽을 건설했다. 저자는 이를 “냉전시대 산물이라고 말하지만 논리도착성 사고의 나쁜 결과라고 하는 편이 낫다”고 꼬집는다.
이때 동독 정부가 취했어야 할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는 무엇이어야 했을까? 저자는 “왜 서독 사람은 동독으로 도망치지 않는가?”가 됐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상식과 비상식이 충돌하는 사례는, 비단 다른 나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무수히 많을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지금 세계는 거대하고 장벽이 없는 정신병원”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두 곰곰이 돌아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