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인 2명, 면세구역서 출국장 들어가 출입문 뜯고 밀입국
잠김 풀린 門, 느슨한 경비… 공항측 하루 지나서야 알아채
밀입국자들, 나흘간 천안까지 활보… IS 테러범이었다면 '아찔'
환승객 사라졌는데… 단 하나도 작동 안한 보안 매뉴얼
예정된 베이징行 비행기 미탑승… 항공사, 출입국사무소에 보고
출입국사무소, 26시간 지난 뒤 공항공사에 "2명 추적해달라"
공항공사는 통보 받고서야 알아, 문 뜯는 CCTV 장면 뒤늦게 확인
IS(이슬람국가) 등에 의한 국제적 테러 사건이 잇따르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최일선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의 보안시스템이 중국인 남녀 2명에 의해 한순간에 뚫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인천국제공항의 보안시스템을 뚫고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4분이었다. 이들은 심야 시간대 인천공항 출국장 출입문을 손으로 뜯고 나와 나흘 동안 국내에 불법 체류하다 25일 충남 천안에서 검거됐다.
우리나라 보안 당국은 최고 보안등급('가급')이 적용되는 국가 주요 시설인 인천공항의 출입문이 뜯겨나갔지만, 만 24시간이 지나서야 이 같은 사실을 알아챘다. 이들이 테러 조직원이었다면 대한민국의 안보를 송두리째 흔드는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아찔한 상황이다.
25일 본지가 인천공항 내 CCTV 등을 통해 확인된 이들의 동선을 분석한 결과, 하루 17만여명, 연간 약 4900만명이 드나드는 인천공항의 보안시스템은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법무부 출입국사무소와 공항공사, 항공사 등의 보안 실패가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빚어진 사건이다.
허모(31)씨와 펑모(여·31)씨 등 중국인 2명은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대한항공 KE002편을 타고 지난 20일 오후 7시 31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대한민국 비자를 받지 못한 이들은 하루 뒤인 21일 오후 8시 17분 중국 베이징으로 떠나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할 환승객 신분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인천공항 2층에 있는 환승 심사대를 일단 통과한 뒤 20일 오후 8시 50분쯤엔 출국장이 위치한 여객터미널 3층 면세(免稅)구역으로 이동했다. 여기서부터 대한민국의 유·무형 보안시스템이 최소한 5번 뚫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우선 3층 면세구역에서 출국심사대·보안검색대 등이 있는 출국장(3번) 내로 진입하는 관문이 1차로 뚫렸다. 인천공항의 총 6개 출국장 가운데 4번 출국장만 24시간 가동하고 3번 출국장을 비롯한 나머지 5개 출국장은 매일 오후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폐쇄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 보안 매뉴얼은 작동하지 않았다. 중국인 허씨가 20일 오후 11시 54분쯤 출국심사대 등이 있는 출국장 내로 통하는 3번 출입문으로 다가서자 잠겨 있어야 할 스크린도어가 '안방으로 도둑을 들이듯' 자동으로 열렸다. 항공 전문가 A씨는 "사실상의 '1차 국경'이 허물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출국장으로 들어간 허씨는 1시간 20여분간 출국장 내 동태를 살핀 뒤 21일 새벽 1시 11분쯤 동행한 펑씨를 출국장 내로 끌어들였다. 1차 국경을 뚫은 이들은 출국심사대 옆 통로에 있는 출입국관리소 상주직원용 출입문도 무사 통과했다. 이 출입문 역시 잠금장치가 가동되지 않고 이들이 다가서자 저절로 문이 열렸다. 공항공사 측은 "이 출입문은 사람이 다가서면 자동으로 열리는 구조"라며 "이들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무사 통과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2차 관문의 보안시스템도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국토부 등에 따르면, 인천공항의 6개 출국장 가운데 1번과 6번 출국장의 출입문 관리는 공항공사 소관이며, 나머지 2~5번 출국장의 출입문은 법무부가 관리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3번 출국장 내에는 남성 직원용 수면실이 있어 출국장 출입문이 폐쇄되지 않고 자동으로 열렸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평소에도 이 출입문을 폐쇄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인 남녀는 1차 관문을 뚫은 지 14분이 지난 21일 새벽 1시 25분에는 공항 로비로 통하는 출국장의 마지막 출입문까지 손으로 뜯어낸 뒤 도주에 성공했다. 콘크리트 바닥에 경첩으로 연결돼 자물쇠까지 채워진 잠금 장치를 뽑아내는 모습이 공항 내 CCTV에 찍혔다고 공항공사 측은 전했다.
이 과정에서 출국장 내 보안 요원은 출국장 정중앙에 위치해 근무해야 한다는 경비 매뉴얼을 어긴 사실도 드러났다. 공항공사 측은 "출국장 내 사각지대인 구석자리에서 근무하느라 중국인 남녀의 이동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고 말했다. 단 14분 만에 대한민국의 보안 관문 4개가 단숨에 뚫려버린 것이다.
법무부 출입국사무소의 '보안 무방비' 사실도 확인됐다. 지난 21일 오후 7시 KE853편을 타고 중국 베이징으로 떠났어야 할 이들이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대한항공으로부터 21일 오후 7시 57분쯤 통보받고도 만 26시간을 넘긴 지난 22일 오후 8시 17분에야 공항공사 측에 "미탑승 중국인 2명의 이동 동선을 추적해 달라"며 CCTV 확인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서대 김웅이 교수(항공교통학과)는 "통상 국제적 대형 공항에는 각각의 공간에 각각의 보안시스템이 적용되는데 인천공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인천공항이 고객 서비스 편의 등에는 신경을 썼지만 보안 부문을 소홀히 해서 빚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 B씨는 "9·11 테러 사건 등을 계기로 미국과 영국 등 외국의 대형 공항은 서비스에 대한 부분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보안 장치를 대폭 강화하는 게 현실"이라며 "최근 국제적인 테러가 빈발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이번 기회에 인천공항의 보안 시스템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허씨와 펑씨는 지난 20일 저녁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공항 측에 "베이징으로 가는 항공기를 갈아탈 때까지 남는 시간 동안 (국내로) 잠깐 입국할 수 있느냐"고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공항 관계자는 "이들이 한국 비자가 없었고 사전에 환승 여행객 관광 신청도 하지 않아 허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공항 보안 관계자 등을 상대로 이들이 출국장 문을 어떻게 열고 밀입국할 수 있었는지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